왜 처음엔 서로에게 끌리는가
의심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기운을 내는 사람의 따뜻함에 은근히 끌립니다. 자기 안에서 좀처럼 생기지 않는 즐거움이 그 사람에게는 넉넉하기 때문입니다.
북돋우는 사람은 반대로, 쉽게 들뜨지 않는 사람의 날카로움에 매력을 느낍니다. 자기 흥분을 진정시켜 줄 침착한 상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.
한 사람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쉽게 들뜨지 않고, 다른 한 사람은 사람들을 신나게 만듭니다. 한쪽은 의심하는 사람이고 한쪽은 북돋우는 사람입니다.
의심이 앞서는 쪽과 열정이 앞서는 쪽은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를 시험합니다. 아래는 이 두 사람이 어디서 서로를 지치게 하고, 그런데도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.
의심하는 사람은 어디서든 기운을 내는 사람의 따뜻함에 은근히 끌립니다. 자기 안에서 좀처럼 생기지 않는 즐거움이 그 사람에게는 넉넉하기 때문입니다.
북돋우는 사람은 반대로, 쉽게 들뜨지 않는 사람의 날카로움에 매력을 느낍니다. 자기 흥분을 진정시켜 줄 침착한 상대로 보이기 때문입니다.
가장 깊은 갈등은 의미를 두고 생깁니다. 북돋우는 사람이 무언가에 가치를 부여하면 의심하는 사람이 곧장 허점부터 짚습니다. 한쪽은 그것을 현실 감각이라 여기고 한쪽은 기분을 망치는 일로 받아들입니다.
이 일이 거듭되면 북돋우는 사람은 자기 열정이 번번이 부정당하는 데 지치고, 의심하는 사람은 자기 날카로움이 왜 미움받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. 둘 다 상대를 바꾸려다 서로를 지치게 합니다.
한 사람이 의심할수록 다른 사람은 더 열심히 설득하려 하고, 설득이 강해질수록 의심은 더 날카로워집니다. 둘 다 상대를 납득시키려는 행동이 거꾸로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반복에 빠집니다.
이 반복이 오래되면 북돋우는 사람은 점점 무력해져 특유의 활기를 잃고, 의심하는 사람은 곁에 남아 주던 사람마저 잃은 채 더 깊은 냉소에 빠집니다.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결말입니다.
역설적으로, 날카로운 의심과 사람을 살리는 의미는 합쳐질 때 가장 단단해집니다. 의심하는 사람의 비판이 북돋우는 사람의 열정에 방향을 주고, 북돋우는 사람이 만드는 의미가 의심하는 사람에게 다시 살 이유를 줍니다.
비판은 본래 더 나은 것을 향한 마음이고, 열정은 본래 의미를 향한 마음입니다. 둘이 서로를 적이 아니라 보완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, 서로를 지치게 하던 차이가 함께 단단해지는 조건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.
대화가 자주 의심과 열정으로 갈립니다. 의심하는 쪽이 한 번은 인정부터 하고, 북돋우는 쪽이 한 번은 의심도 경청할 때 관계가 편해집니다.
경험 많은 쪽의 냉소가 배우는 쪽의 의욕을 없애기 쉽습니다. 비판할 때 다음에 할 일을 함께 알려 줄 때 가르침이 살아납니다.
한쪽의 열정과 한쪽의 회의가 부딪칩니다. 서로의 말투를 약점이 아니라 다른 진심으로 이해할 때 오래갑니다.
윗세대의 냉소와 아랫세대의 의욕이 엇갈리기 쉽습니다. 가르치려 하기 전에 서로의 시대를 먼저 이해할 때 대화가 이어집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