왜 처음엔 서로에게 끌리는가
자신을 작게 보는 사람은 큰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의 확신에 매혹됩니다. 자기 안에는 없는 담대함을 그 사람은 넉넉히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.
큰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은 반대로,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의 헌신에 마음을 놓습니다. 자기 비전을 묵묵히 도와줄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.
한 사람은 자기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위축되고, 다른 한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큰 미래를 또렷이 계획합니다. 한쪽은 자신을 작게 보는 사람이고 한쪽은 크게 보는 사람입니다.
큰 기대와 깊은 자기 의심이 만나면, 한쪽의 기대가 다른 쪽의 위축을 더 깊게 만들기 쉽습니다. 아래는 이 두 사람이 어디서 어긋나고, 그런데도 어떻게 서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지를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.
자신을 작게 보는 사람은 큰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의 확신에 매혹됩니다. 자기 안에는 없는 담대함을 그 사람은 넉넉히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.
큰 미래를 계획하는 사람은 반대로,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의 헌신에 마음을 놓습니다. 자기 비전을 묵묵히 도와줄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.
가장 깊은 갈등은 기대를 두고 생깁니다. 비전을 가진 사람이 너는 더 할 수 있다며 격려할수록, 자신을 작게 보는 사람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더 위축됩니다. 응원이 압박으로 바뀝니다.
도전을 대하는 태도도 갈립니다. 한쪽은 큰일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한쪽은 부족함이 드러날까 두려워 큰일을 피합니다. 그 회피가 비전을 가진 사람에게는 의지 부족으로 보이기도 합니다.
한 사람이 더 큰 기대를 걸수록 다른 사람은 더 깊이 자기를 의심하고, 더 의심할수록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더 위축됩니다. 성장시키려는 마음이 거꾸로 상대를 압박하는 반복에 빠집니다.
이 반복이 거듭되면 자신을 작게 보는 사람은 자기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고, 비전을 가진 사람은 왜 곁의 사람이 도전하지 못하는지 답답해합니다. 둘 다 좋은 뜻인데도 함께 지칩니다.
역설적으로, 깊은 자기 의심에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 놓치는 신중함이 있습니다. 자신을 작게 보는 사람의 조심성이 큰 계획의 허점을 채우고, 비전을 가진 사람의 확신이 그 조심성에 용기를 더해 줍니다.
기대를 압박이 아니라 응원으로 바꾸면, 이 둘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짝이 됩니다. 한쪽은 자기를 믿는 법을, 한쪽은 사람을 기다리는 법을 배우면서 함께 자랍니다.
이끄는 쪽의 큰 기대가 배우는 쪽을 위축시키기 쉽습니다. 결과보다 작은 성장을 먼저 인정해 줄 때 배우는 쪽이 성장합니다.
높은 목표가 부담으로만 느껴지기 쉽습니다. 도전 과제와 함께 실패해도 안전하다는 확신을 줄 때 도전이 가능해집니다.
한쪽의 확신과 한쪽의 자기 의심이 어긋납니다. 있는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말을 먼저 건넬 때 관계가 편안해집니다.
부모의 큰 기대가 아이를 압박하지 않도록, 조건 없는 인정을 먼저 줄 때 아이가 자기 가능성을 믿습니다.